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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재단 국제시인상 수상 기념 강연] 아드리아노 신전의 저녁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17-02-22
조회
426

로마재단 국제시인상 수상 기념 강연

 

 

 

아드리아노 신전의 저녁

 

영광에 대한 자세에는 천진난만이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나는 그런 다섯살 아이의 어떤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원 1300년 4월의 부활절을 맞은 ‘세계의 수도’ 로마는 유럽과 유럽 밖의 각지에서 모여든 전례(前例) 없는 순례자들의 범람으로 모든 거리와 광장이 채워집니다.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온 충직한 남정네도 있고 아이들도 올망졸망 엄마의 두 팔에 매달려 왔습니다.

교황은 자신과 동일시하는 부활의 의미가 담긴 ‘희년’을 선포합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대에의 숙연한 기대들이 초만원의 순례자 남녀노소의 가슴 속에서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미래가 한층 더 광휘를 뿜어대며 현재의 뒤를 바짝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지상에서 가장 성성한 도성(都城)의 기운 고조(高潮)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로마의 특별한 순례행렬 가운데 35세의 단테 알리기에리도 있었습니다. 사랑의 힘이 태양과 별을 움직인다고 노래할 이 시인이 나중에 보카치오가 이름 붙인 『신곡』을 쓰기 훨씬 이전이었습니다. 보카치오에 의하면 ‘단테’라는 이름은 ‘너그러운’ 이라는 뜻과 ‘베푸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600년이 지난 뒤 한 아시아의 시인이 그런 ‘너그러운’ 그리고 ‘베푸는’ 격조 있는 로마재단이 주는 ‘국제시인상’을 받는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이 상의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다시 한번 시인이 되는 운명의 다의성(多義性)을 더 깊게 아로새겼습니다.

마침 나는 주어(主語)가 곧잘 지워져도 무방한 한국어 속에 자주 숨거나 지워진 1인칭 화자(話者)로서 살아온 시의 세월 60년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제 시가 귀신의 일인지 허공의 일인지를 터득할 만 하더라도 도리어 시를 정의하는 나 자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시인이 되면 될수록 시인은 자신의 뒷모습을 모르는 것처럼 시를 모르게 됩니다. 다만 나에게는 노래하는 자와 노래를 듣는 자의 실재(實在) 사이에서 영혼의 대칭(對稱)이 이루어지는 체험이 있습니다.

나의 시는 첩첩이 고난을 견뎌온 한국어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파도소리를 건너가면 중국대륙의 여러 방언이나 일본 열도(列島)의 고대한국어의 잔재인 발성들이 언어의 지정학적 긴장으로 울타리를 쳐줍니다. 특히 동아시아 대륙에서 들려오던 고대 부족어들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것과 달리 한국어는 거의 기적처럼 연면(連綿)이 이어와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모진 생존으로 지켜온 한국어와 한국 표음문자가 20세기 벽두의 식민지체제를 지나면서 절대금지의 언어가 되고 맙니다. 내 어린 시절에는 밤에만 등불 끈 방안에서 죽은 조상의 망령과 산 자손의 생령(生靈)에게만 몰래 한국어 몇 마디가 오고 갔습니다.

1945년 여름 식민지 36년의 종언(終焉)은 바로 빼앗긴 모국어와 문자의 해방이었습니다. 그때 내 미래의 시(詩)도 함께 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자아(自我)를 강조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아의 그림자가 땅에 기다랗게 눕는 한국의 석양(夕陽) 머리에는 많은 부사와 형용사가 어떤 단안(斷案)도 마다하는 표현의 관절이 되어줍니다.

어쩌면 명료한 지시력(指示力)을 가진 양각(陽刻)의 이탈리아어 속의 많은 명사들이 모음으로 끝나는 그 신비스러운 모성(母性)의 여운은 한국어의 위와 같은 의미의 유보(留保)와 대조될지 모릅니다.

2013년 봄 우리 부부는 베네치아의 카포스카리대학의 초청으로 베네치아에 4개월 동안 머문 적이 있습니다. 마치 고향에 와서 살 듯 편안했습니다. 그전에도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에 초청받아 오면 적지 않은 여러 (자발적인?) 지역을 허술한 시의 나그네로 떠돌았는데, 그럴 때마다 다시 태어날 곳이 여기다, 여기다 하고 각 방문지에 열렬히 적응했습니다. 이런 방문들은 무척이나 종교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내 귀 안에서 쟁쟁한 그 여유있는 낱말 ‘알로라’가 고막을 지나 내 좌뇌(左腦) 속에 각인되었습니다. 어떤 성급한 결정이나 답을 서두르지 않는 평상심의 이완(弛緩)을 그 낱말은 담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나는 너다,’ 또는 ‘나는 어떤 나다’ 라는 것으로, 나는 그렇게 고정된 나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나는 나만으로 두절되지 않고 하나의 세계가 진행해 가는 술어(述語)로의 내 삶의 차원을 열어줍니다. 그럴 경우 내가 서 있는 곳은 한국이라는 속지주의(屬地主義)로 끝나지 않고 다른 장소에의 능동적인 전개의 원점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합성(合成)으로 풀이되는 세계는 동시에 자아의 확대를 실현할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나는 20대 불교승려시절 한국전쟁 뒤 초토가 된 한국의 산야를 떠도는 편력에 지칠 줄 몰랐습니다. 떠돌다가 길을 모르거나 방향을 잃어버리면 그곳의 소나무 가지 하나가 뻗은 쪽을 내가 갈 방향으로 삼았습니다 그런 우연의 저쪽에서 틀림없이 내 하루의 목적지가 나를 맞아주었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계시이거나 미신이 아닙니다. 사물과 나 사이의 친화(親和)가 이루어내는 새로운 현실입니다.

나는 필연이 우연의 반대를 넘어 자주 우연으로 변신(變身)되는 일을 목격합니다. 우연 자체가 필연의 이면(裏面)일 때도 발견합니다. 돌아다 보면 나의 시는 이 같은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율동이기도 합니다.

1950년대의 폐허에서 나는 인간을 긍정할 수 없게 되었고 세계를 하나의 미망(迷妄)으로 삼았습니다. 내가 낳은 허무는 고대 인도의 공(空) 사상과 닿아있지도 않았고 중국의 옛 무위(無爲)나 19세기말의 서구의 니힐리즘 따위와는 아무런 혈연도 없는 것으로 나 자신의 원시상태였습니다. 그런 삶의 무중력적(無重力的) 상황 속에서 나의 시가 하나 둘 명멸(明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극적인 선(禪) 생활이 언어를 가차없이 사절하거나 사절한 언어가 내 본능의 자장(磁場)에 빨려 들거나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길고 긴 세월 동안 시달렸던 불면증의 밤에는 죽음의 유혹이 만연했습니다.

1970년대 첫머리 한 노동자의 분신자살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의 집요한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납니다. 그 이후 현실과 사회에 대한 뜨거운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느덧 내 시가 광장의 시위(示威)에 터지는 최루탄의 독한 연기 속으로 옮겨가고 있는 현실을 체험했습니다.

약 20년간의 이런 파란곡절을 지나면서 나는 시대와 자아의 조화를 추구했고, 시 한편이 나올 때마다 그 시의 시대는 다른 시대의 미래까지 아울러야 할 사명을 만났습니다.

맹수들에게 쫓기는 위기 앞에서 그 위기를 없애준 베르길리우스는 어쩌면 단테의 인도자가 아닌 단테의 자신이라는 것을, 『신곡』 ‘지옥편’의 첫머리에 나오는 ‘나’는 ‘나 이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당신은 모든 시인의 영광이요 빛이나이다” 라는 찬사를 바치는 단테야 말로 그 찬사를 환원시키는 단테일 것입니다.

시인의 본질은 한편의 시가 태초의 시가 될 때 이루어집니다. 우주의 차원이든 분단국가 한국의 차원이든 아는 나의 가난한 시조(始祖)로서 존재합니다. 누구의 아들이나 누구누구의 피동(被動)으로는 결코 시인의 역경(역경) 속에서 헌신할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나의 모국어는 국적(國籍)의 기호(記號)가 아니라 우주의 어떤 방언입니다. 언젠가 이 지상에서 시가 죽는다면 우주의 암흑물질 속에서도 죽은 시는 살아날 것입니다. 나의 시는 행성 위의 주어가 아니라 저 밤하늘의 술어(述語)입니다. 내 이름 역시 명사가 아닙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내 시 한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어느 전기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한 삶의 나비로 태어났다

빛 앞에서

아주 작은 눈이 떴다

어둠 속에서

아주 얇은 날개가 돋았다

바다를 모르는

폭풍을 모르는

한 마리의 나비는

언제나 망한 나라의 잎새에 내려앉았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갔다

 

불멸이 얼마나 허황한가를

처음부터 알고 있는 듯

오직 위대한 것은 낙조뿐인 들녘에서

낮은 식민지

밤은 나의 조국이었다

그런 밤에 금지된 모국어가

아무도 몰래 내 잠든 몸 속에서 두런거렸다

 

해방이 왔다

모국어가 찬란했다

 

전쟁이 왔다

폐허에서

폐허의 주검 사이에서

피묻은 모국어가 살아남았다

그 모국어로 노래했다

나의 노래는 애도이고

나의 노래는 누구의 환생이었다

또한 나의 노래는

불멸이 아니라

소멸의 노래였다

 

독재와 총 앞에 섰다

나의 주술이

몇번인가 갇혔다

모순은

모순의 서사와

모순 거절의 서정을 낳았다

 

아직도 지난 날의 어린 나비는

지상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의 진실들을 꿈꾼다

삶은 미완의 내면으로 떠돈다

 

남은 꿈 하나

먼 내일의 땅 속 나비화석은

노래화석이기를

 

 

감사합니다.

그라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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