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창립일 고은 시인 인사말

재단 설립에의 사사(謝辭)
—나의 생득적인 무지

내가 의도한 바 없던 이런 자리에서 여러분을 뵙게 된 기쁨은 하나의 무거움이기도 합니다. 저의 가족은 안성에서 30년을 산 뒤 이곳 수원에서 3년차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옮겨심은 나무로 말하면 이제 받침대 지지목을 걷어내도 될 만큼 뿌리가 내렸습니다.
올 초가을인 9월 11일의 ‘고은학회’ 창립행사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날의 인사말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염치 몰염치를 집 뒤안에 두고 왔습니다. 우물쭈물하지도 않으렵니다. 초연한 듯 꾸미거나 계면쩍어하지도 않겠습니다. 아내도 주저하지 않고 함께 왔습니다.
불편한 심사일 때 중국의 노신은 자신을 당시의 중국 근대문학사회에서 ‘부재자’로 자처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시인 호르헤 보르헤스도 자국 안의 문단 외곽에 밀려서 스스로를 ‘투명인간’이라고 자조했습니다. 실지로 고대 인도 마누법전이 말하는 실정법 차원의 ‘나스티카’는 ‘없는 자’라는 뜻이라 합니다.”
나 자신의 말의 인용이 길어졌습니다만 여기 오기로 하면서 추가되는 연상이 있었습니다. 우주생명계를 분류할 때 인간계와는 별도의 ‘사람 아닌 사람(人非人)’이 그것입니다. 또 하나는 근세 중기 퇴계 이황이 유학이 아니라 노장의 길을 간다고 비판했던 성운(成運)이 속리산 재야생활에서 자신을 노래한 ‘허부찬(虛夫贊)’이 생각났습니다.

내 살가죽은 볏집이요 근육은 새끼줄이다
사람 모양으로 우두커니 서 있으니
마음도 없고 뱃속도 텅 비어 있네
천지 안에 있으면서 보도 듣도 못하니
무지렁이 이 몸 누구에게 성내겠는가

심지어 그는 호 하나를 더해 대곡(大谷) 말고도 허부(虛夫)를 자칭했습니다. 이런 일로 해서 퇴계는 남명 조식의 ‘신명사명’과 함께 노장에 병들었다고 지적합니다.
오늘의 나는 이런 허수아비도 아닌 바 어느 때는 허수아비이고 어느 때는 사람인 애매모호이거나 교묘한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과묵하지 않고 이 재단설립의 주어(主語)로서 소견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여깁니다.

분명한 것은 이로부터 나의 정신적인 신분이 사사로운 자재(自在)보다 공적인 존재의 윤리를 상상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재단의 업무가 그만큼 공공적인 가치를 지향할 때 나의 이런 상상도 구현될 것입니다.
사(私)는 언젠가는 공(公)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은 시간의 저항을 통해서 알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의 강박이 담긴 지공무사(至公無私)라든가 그것의 완충인 선공후사(先公後私) 따위보다 더 냉철한 노릇인지 모릅니다.
나는 사가 결코 공에 미칠 수 없게 작은 가치라든가, 공이 사를 애오라지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을 폐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는 어쩌면 공과 똑같이 신성할 것입니다. 이런 사를 마치 도구의 원인으로 몰아부치는 전체주의와 이것을 세상의 보편타당한 모든 규범과 당위에 대해 유해한 것으로 오해하는 전제적 (專制的) 사고에 대해서 사는 좀 더 자체의 존엄성을 그러내야 하겠습니다. 물론 여기서는 세상의 이익을 독과점하는 그런 악을 논외로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가 공의 가치를 몰각할 때 공뿐 아니라 사 자체도 몰락하고 만다는 것이라면 사와 공은 상호불가결한 가치의 양성(兩性)이겠습니다. 그렇다면 공의 사에 대한 자상함과 사의 공에 대해 겸손함을 공존하는 예도(禮道)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인류사회는 어느 때는 ‘나’의 연대기와, 어느 때는 ‘우리’의 역사시기를 중요시할 때가 있어왔습니다. 나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이 사와 공이 하나의 ‘공(空)—비어 있음’으로 발전하는 승화의 능력이 앞으로 인류에게 남겨진 어려운 숙제라고 여깁니다. 지금은 사회 도처에서 사는 야비해지고 공은 비루해진 시대의 중환(重患)을 보게 됩니다.
모든 공의 대의명분 속에 감추어진 사의 행태라는 것이 조만간 드러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이에 질세라 사 또한 사의 본래 명목으로부터 멀리 표류한 사악(邪惡)의 ‘사(邪)’를 본색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나는 이 재단이 경계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우려상황으로부터 자체의 정당한 의무를 항상 놓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에 대한 기념이나 재현의 꿈이라 해서 세상의 비판적 이성(理性)으로부터 동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내 문학과 삶에 대해서는 세상의 이해에 일단 맡기기로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해란 세상 이상의 차원까지 포함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런 경지는 전복적(顚覆的)인 차원을 만나서야 새로운 가치판단을 낳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여기서 나에게 남아 있는 문학명제를 꺼내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자리는 나의 미래에 대한 자리이기보다 나의 과거를 미래화하는 자리일 것입니다.
다만 내 지난 날의 문학행위가 나에게 남은 미래에 맞닿아 있다는 바는 사실(寫實)과 낭만이 동의어라는 사실이고, 나에게 사실주의는 낭만주의를 낳고 동시에 낭만주의는 사실주의를 갈애하는 그 모순의 상관성이 내 문학의 희로애락이겠습니다.
나는 어떤 불화(不和)도 총화(總和)의 원소라는 사실, 어떤 이원론도 독선도 용해되는 지하의 마그마에 들어가 버린다는 사실을 허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도상(途上)의 일입니다. 이런 결산도 사양하는 행렬의 과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세계지속의 객관적 상태를 도외시한 한 생명체의 유한에만 의미를 설정하는 일을 단념하지 오래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에게 가장 구어적(口語的)으로 낯익은 지천명(知天命)이나 대천명(待天命)의 해묵은 관념으로부터 나는 이탈해 왔습니다.
누구는 생의 말년은 성실의 감정과 절망의 감정이 싸우는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후기의 스타일’이라는 사상도 만나 보았습니다. 물론 나의 현세적인 삶은 동양에서 오래 노래되는, 생이란 한 조각 구름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바라는 익숙한 바탕 위에 내려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고뇌와 진실이 반추되는 위와 같은 절박한 존재의식에 나의 공감도 있을 법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엘레지에 속하지 않습니다. 나는 철부지이고 사물과 일에 불혹(不惑)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삶에 대한 지각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일종의 생득적인 무지로 삽니다.
그래서 아직도 처음이라는 말에 설레입니다. 이 말의 저쪽에는 필멸이라는 매혹이 엄연합니다. 그래서 나의 문학과 삶은 완성도 미완성도 아닌 어떤 중단일 것입니다. 그 중단을 잇는 일은 나의 몸이 아니라 세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야 말로 내 문학의 속수무책의 끊임없는 충동을 낳아주었고 세상이야말로 내 욕망으로도 다 할 수 없는 무(無)이기 때문입니다.

고은재단은 사적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그럴수록 공적이어야 합니다. 그 공적인 여러 기획들이 다채롭기를 바랍니다. 내가 나 아닌 상태로까지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나는 생전과 사후를 굳이 구별하지 않는 자세를 가지고 여생의 문학 속에 파묻힐 것입니다. 소동파 형제처럼 아버지로부터 점지(點指)받은 선택된 시인도 아닙니다. 그저 무명 필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장차 좀도둑이 될지 거지가 될지 모르는 삶을 시작해 어린시절에는 지게질을 배웠고 젊은 날은 술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60년 세월을 다해 가는 동안 저 5세기 기독교 수도사들이 릴레이로 그 중단 없는 성가 부르기의 아코에메티를 목쉬면 새 소리로 부르고 또 목 쉬어 지치면 새 목소리로 이어가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울고 무엇인가를 썼습니다.
아 얼마나 나는 두견새였는지 모릅니다. 그네들은 잠자는 시간이 따로 없어서 울음 틈서리에 쪽잠을 자면서 그토록 불야성의 울음으로써 세월을 다하는 목숨이었습니다. 이런 새의 밤하늘 밑에서 나의 뮤즈가 어떻게 잠들어 버리겠습니까.
내 시는 굳이 누구 없이도 나와야 하는 심장의 뉴스로, 뇌의 소식으로, 뼈들이 감추고 있는 밀교(密敎)와 수피즘을 불러낼 것입니다. 주술의 신명에는 자타가 없습니다.
그것이 꽃이건 똥이건 무엇이건 막무가내일 것이고 그것이 번개라면 아래로 떨어지는 것하고 다르게 하늘로 솟아오르는 ‘귀환’으로서의 투신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연고도 없는 내려앉은 무덤의 운명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처럼 고백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재단설립을 위해 오랜 시간 심신으로 고생하신, 여기서 이름을 일일이 밝히지 않는 여러분에의 경의가 이렇듯이 장황해졌습니다. 재단의 내일은 여러분의 걱정이 좌우할 것입니다. 베트남어 ‘감은(感恩)’을 뜻하는 말로 인사합니다. 까몽!